취향과 절대미, 훌륭함의 그 경계선 어딘가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취향’ 하면 여러분이 무엇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파악하는 바로는
블루스, Eric Clapton, 축구, Liverpool FC, 와인, 이탈리안, 펜더기타 등이 있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이 카테고리들은 이렇게 이어져있다.
음악 - 블루스 - Eric Clapton
운동 - 축구 - Liverpool FC
음식 - 이탈리안, 와인
기타 - Fender - 스트라토캐스터 (최근에는 Gibson 맛을 알게되었다)
전자기기 - Apple
이렇듯 나의 취향은 나름 규칙이 있고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음악이라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블루스를 특히 좋아한다.
운동이라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축구를 좋아하며, 리버풀FC를 응원한다.
음식, 기타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을 해보았다.
먼저, 첫번째로 떠오른 단어는 클래식(Classic)이다.
클래식음악과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그 이름 역시 후대의 사람들이 붙인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와도 연관되어 있다.
두 번째는 심플함(Simplicity)이다.
이것은 애플의 디자인에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
세번째는 품질(Quality)이다.
나는 어떤 물건이건 절대적인 품질을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저렴하더라도 품질이 좋은 물건이 있다. 비싼 값이 품질을 꼭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품이 낀 물건들이 특히 인기가 많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현대음악의 뿌리가 되는 블루스야말로 클래식함의 표본이다.
이건 더 설명할 것이 없다. 또, 축구팀도 근본있는 팀이 좋다. 그래서 맨시티가 아닌 리버풀이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 말 말기를 바란다) 음식도 그냥 다 좋아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음식과 와인에만 관심이 있다. 이탈리아는 와인 종주국이고, 음식은 프랜치와 다르게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심플함의 극치이다.
세계 최초의 일렉기타는 누구의 작품인가?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Fender사의 Leo Fender이다. 소리는 또 어떠한가? 가장 왜곡이 덜하고 거칠지만 단단한 소리를 낸다. 애플 사용자들은 잘 알겠지만, 아이폰을 써본 사람이 삼성 갤럭시로 기기변경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체제 특유의 복잡함과 정신없음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애플의 독보적인 디자인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가장 본연의것, 심플하면서도 품질이 높은 것. 이것들이 나의 취향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취향’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의 ‘취향’이라는 말은 마치 마법의 단어라도 되는 듯 하다.
‘취향’이라고 말해버리면 거의 모든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취향 이전에 수준을 논하고 싶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전에 레슨하던 학생과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내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친구는 “재즈를 좋아해요”라고 답했다. 재즈를 꽤나 들어왔었기에, 어떤 재즈 아티스트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Michael Buble“ 였다. 또 누구 좋아하는지 묻자 대답을 망설이더니 말하더랬다. ”Stevie Wonder 요.“
꽤나 실망이었다. 적어도 Ella Fitzgerald나 하다못해 Frank Sinatra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내가 그 학생을무시하거나 놀린다고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이 친구는 취미생이 아닌 나름 음악을 진지하게 해보려는뮤지션 지망생이고, 노래도 몇년간 배웠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이렇게도 모른다는 것은 그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 않거나, 자신이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친구는 그 후로도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며 주장하고 다녔지만, 나는 아무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친구가 스스로 입을 열었다. ”쌤, 옛날에 제가 재즈 좋아한다고 하고 다녔던게 너무 부끄러워요. 하하“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해의 정도에 대해서는 절대적 평가기준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어느정도의 충분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다시 취향 이야기로 돌아가서, 취향을 논하기 전에 그 대상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잘 알고 있는가?
절대적인 미의 기준은 분명 존재한다. 시들을 대로 시들어 고꾸라진 꽃을 보고 봄철에 만개한 벛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이처럼 ‘훌륭함’의 절대적 기준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무언가를 구매하게 될 때, 아주 꼼꼼하고 면밀하게 모든 면에 대해서 검토하고 조사한다. 그래서 그 제품을 구매할 즈음에는 과장 조금 보태서 준 전문가가 되어있곤 한다. 어떤 사람은 직감적으로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탐구해본다면 알 수 있다. 무엇이 훌륭함인지.
사람들에게도 나는 바란다. 진정한 훌륭함,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 대해서 공부하고 깨닿기를 바란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화려한 기법들과 기믹(Gimick)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짜 좋은 것을 찾아가기를 간절히바란다.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든, 음악에 있어서든, 디자인에 있어서든. 이것은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나역시도 내 삶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좋은 길을 선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끝에는 내가 믿는 ‘절대선’이 있다. 그것에 한 발자국 매일 더 다가가고 싶다.
취향이전에 수준이라는 말이 인상깊군요ㅎㅎ 아무래도 요즘은 모든게 허용되는 시대니깐요. 우리나라가 덜 개방적인라는것도 옛날 말이 되었죠.
허용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 정체를 몰랐다가 그게 수준이라는걸 알았네요! 좋아하기전에 먼저 제대로 알자라는 깨달음이 있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