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예영씽의 첫 앨범과 콘서트는 본인인 예영씽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그랬다.) 그 이유는 내가 예영씽의 '친구'라는 이상하고 특이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예영씽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풀려나가는 나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음, 이 글에서만큼은 편하게 본명을 쓰겠다. 내게 더 친숙하고 편안한것은 예영씽보다는 예영이다. (가끔은 애옹이라고도 부른다.)
(프로필사진 찍던 날, 예영이 머리를 만져주며 전화를 받는데 어쩌다 찍힌 사진)
예영이와는 벌써 5년째 친구이다. 단연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둘도 없는 싱어송라이터 동기이다. 역시 싱어송라이터들끼리는 비슷한 정서가 있어 5년간 주고 받아온 양이 꽤 된다. 웃긴 얘기인데 내가 만약 마마세이처럼 공동체성과 리더십을 강조하는곳이 아닌 보통 학교나 어딘가에서 예영이를 만났다면 우린 절대 친한 친구가 될 일이 없었을 거다. 우린 그만큼 안맞았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알게된 지 3년째 정도까진 그랬다. 어떻게 보면 억지로 친해졌다. 그치만 그 차이를 극복하게 되며 근 1,2년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부족했던 몇 퍼센트를 채워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인연으로 서로를 여기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을 애쓰고 극복해보려던 그 과정은 감정적으로 가장 치달아있는 청소년기에 참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 참 멋지게 성숙해지고 서로를 허용해 줄 여유가 생겨 이제는 서로의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한계를 넘어 부끄럽지만 서로의 손을 슬며시 잡고 "우리 늘 함께하자 영원히!"(출처 : '친구에게' 가사)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이 비교적 최근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영씽 1집까지 달려온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어느 날 버스킹 후..)
'예영씽 트리오'라는 단어는 학생시절부터 줄곧 있어왔다. 퍼커션의 자리는 항상 나였고, 베이스 주자는 돌고 돌아 지금에서야 정착된 것이었다. 한 때에는 내가 방해가 되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서운한 감정은 사실 정말로 없었다. 그저 '아직 부족한건 당연한 일이고, 나중에 더 발전했을 때 다시 내가 자리를 채울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나보다 더 적임자가 나타날 수도 있지' 생각하고 넘겼다. 아쉬움은 있었으나 서운함은 없었다. 한 편으론 사실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영씽의 1집을 기획하면서 다시 떠오른 예영씽트리오에는 역시나, 50%정도 예상했던대로 내가 다시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왼손에 스틱들고 키보드 볼륨 올리기. 스틱 하나는 피아노 위에 올려두고 오른손으로 피아노 치기..)
물론 정말 기쁜 일이긴 했지만 막막함과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예영이와의 합주는 내가 겪은 모든 합주 중 가장 어려웠고, 예영이의 음악은 내가 이태껏 해 온 연구, 연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도전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갑자기 떠오른 프로듀서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 예영씽의 '친구' 역할을 맡아라 = 내가 모든 악기를 다 한다는 임무는, 듣자마자는 너무 훌륭해서 손뼉을 칠 수 밖에 없는 아이디어였으나 연습을 시작하니 갑자기 화가나기 시작하는 그런 아이디어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음악에서 이걸 다 하라고?'… 아마 합주하는 과정동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알텐데 나는 내내 화가 나고 예민해있는 상태였다. 이제 고백한다. 그래서 그랬다.
나도 스스로 생각하며 어이없는 점 하나는, 처음 곡 작업들을 시작했을 당시 나는 억울해있었다. 나한테 너무 심하게 어려운 과제를 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피어난 억울함이었다. 잘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잼파트에서 계속 잔소리 듣고, 구성은 계속 말해주는데도 계속 까먹고, 구성원들의 요구를 즉각즉각 해내지 못하는 등.
(지나가던 사진사분께서 찍어주신 판교역 버스킹 현황)
내가 주인공이었던 1집 콘서트때보다도 더 긴장했고, 거짓말 안치고 부담감이 세 배는 컸다. 나는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틀리지 않고 싶었고 템포를 잘 잡고 싶었다. 나는 사실 팀의 리더인 예영이가 바라는게 이런 종류라고 생각했고, 그 기대를 충족 시키기 위해 정말 그 어느때보다도 연습을 많이 했다. 밀린 연습, 연구를 정말 이번 공연때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혼자 시뮬레이션을 하도 돌린 덕분에 공연 당일 상주해있는 스탭 없이도 아주 성공적으로 내 수많은 악기들과 구역을 컨트롤 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가장 처음 세팅했던 모습)
그러다 공연 전날, 혼자 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몰려오는 깨달음들이 있었다. 합주하며 들었던 잔소리들, 안좋았던 합주 분위기의 원인, 예영이가 스치듯 던졌던 말들과 나의 억울함 등등.. 그 모든 깨달음들이 쏟아져 내게로 오며 결론이 난 것은 '나는 사실 예영이를 서운하게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엉뚱한 결론이었다.
(가운데 있는 애는 아직 내가 소개하지 않은.. 또 하나의 숨겨진 베프. 이기쁨이라고한다. 리조이 아님. 나중에 소개하겠다. 사진은 일본 스타벅스에서.)
두 달 전, 어쩌다 둘이 수다를 떨다가 잠에 들었던 날이 있었다. 그 때 예영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는 생각보다 상처를 잘 안받고 상처를 잘 주는 사람인 것 같아'. 그 때 예영이가 이야기해주었던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나는 좀 놀랐었다. 이런것에 상처를 받았구나 라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특히 그 때 우리는 한창 서로 깊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예영이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생각했던 예영이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골라준 치마랑 머리띠 장착하고 버스킹하는 예영이)
(내가 해준 머리랑 메이크업으로 프로필 모니터링하는 예영이. 옷은 예영씽트리오 베이시스트가 입혀줌.)
(예쁘게 화장해줬는데 대성공했던 날)
(내가 준 머리띠 까지..)
우선 예영이는 손이 생각보다 많이 간다. 많은 것을 도와줘야한다. 막내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해줘야하는게 많다. (밥도 챙겨주고, 옷도 챙겨주고, 화장도 챙겨주고… 등등 뭐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 소녀스럽고, 소심하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역정을 내는 때가 종종 있지만 그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가장 무식하고 순수한 방법이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는 거였다. 예영이는 상처를 잘받고 여리다. 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너무 착한 친구다. 늘 남을 생각한다. 내가 예영이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렇게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반대로 난 예영이를 보고 있었다. 원칙주의에 봐주는 것 없는 사람, 상처 잘 안받고 무덤덤한 사람, 겁 없고 대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적어보니 정말 예영이를 몰랐다. 정말 신기한 건, 이런 예영이와 나의 색이 뒤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최근에 정말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생각보다 화가 많고 냉정하며, 상처를 잘 주고 남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나도 모르게 발견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아마 대부분이 아는 예영이의 모습은.. 이럴것. 휴우. 물건을 자주 던지긴 한다.)
(소심할 때 예영이의 모습)
예영씽 트리오가 함께 예영이의 1집을 만들며 예영이가 바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비로소 공연 전날 밤에서야 깨달아졌다. 예영이가 리더로서 원한 것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구성이 잘맞거나 템포를 잘맞추거나 그런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예영이는 '같은 마음'으로, '함께' 예영이의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예영이가 사랑하는 이 음악들, 소중하게 여기는 이것들에 같은 마음으로 임해주길 바랬던 것이었다. 그것에 있어서 나는 정말 부족했다.
잼을 하면서 예영이의 콜에 건조하게 리스폰스를 했던 나의 무심함, 그래서 예영이의 콜은 항상 소심하고 자신없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 고민끝에 어렵게 용기낸 예영이의 부탁에 무심하게 대답했던 그동안의 나의 모습, 그것들에 사실 상처 받았다고 부끄럽게 이야기하던 예영이의 모습을. 나는 그동안 그것을 어떻게 여겨왔는지 반성하게 되었던 공연 전날 밤. 늦게까지 퍼커션 세트 앞에 앉아 혼자 마지막 테크리허설을 돌리다 불현듯 찾아왔던 그 깨달음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공연날,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를 소개멘트 하던 예영이의 모습과 유독 나에게 꽂히던 그 노래의 가사와 그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이제 안건데 내 앨범에 둘이 찍은 사진이 정말 많다. 느닷없이 찍은 셀피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널 부르면 언제든 와주겠니? 시간이 흘러도 처음 만난 그때처럼, 우리 늘 함께 하자 영원히" 라며 고백하던 열여덟 예영이의 이 가사의 진짜 뜻을. 나같은 무심한 사람은 하기 힘든, 진솔하고 사랑스러운 고백이다. 내가 앞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예영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이런 예영이의 진심에 나도 대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를 쓸 것이다. 지금처럼.
(억울함은 사라지고 '친구에게'를 온 마음 담아 연주했던 그 날)
예영이의 수줍은 고백, '친구에게'에 대해서 감사하고, 나에게 예영씽의 '친구'라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고, 건조한 내가 진정성에 반응하는 방법을 배우게 배우서 감사하다. 이렇게나마 예영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예영이가 이런 공개적인것을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것과 비교적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정서로서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왠지 너에게 쓰는 글인 듯 아닌 듯 한 글로 그냥 애매하게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아 참, 이 글은 예영씽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풀려나가는 나의 이야기…
아 몰라!
정성스레 써진, 사랑이 담긴 편지를 엿본 기분이에요...